그녀가 물었다. 결혼 후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냐고.
며칠 전 그녀의 가족과 식사를 하게 됐는데 때마침 그날이 결혼22년 결혼 기념일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질문을 받고 보니 연애시절과 더하면 30년 가까이를 남편과 함께했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잠시 뒤를 돌아보게 했다.
행복해! 사랑해! 이런 말들을 습관처럼 하던 때가 까마득하다. 그런데 왜 난 그녀의 물음에 그때가 행복했다고 대답하지 못한 거지? 무어라 말을 했는지 얼버무리고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결혼과 동시에 현실의 관계와 생활이 바로 나의 환상은 깨어졌고 출산의 기쁨을 잊게 하는 아이의 성장통을 바라보며 나의 성숙되지 않은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간 현실에 마음 아파했다. 그러면서 돌이킬 수 없는 세월 속에서 묻혀진 삶의 무게가 없던 순수한 때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기억하며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열정에 감사하며 난 또 작은 희망을 꿈꾼다.
다행인건가? 난 지금이 행복하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분주하게 살아왔었다. 항상 마음이 조급하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나와 주위를 힘들게 했는지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지만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세상의 성공은 없지만 나의 경솔함과 실수와 부족함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마음을 열게 하니 삶의 오묘함에 놀라기도 한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에게서 ‘간절함’이란 짧은 글로 포장한 초콜릿을 하나 받았다. 사실 그때 내 마음에 간절함이 컸는데 건네 받은 그분의 작은 섬세함이 난 마치 그분이 나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게다가 좋아하는 달콤한 초콜릿을 조금씩 녹여가며 그 며칠 몸과 마음 다 행복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게으름도 살짝 더해가는 것 같다. 젊어서는 기념일이나 어떤 날들에 의미를 두고 설레기도 했는데 지금은 감동도 적어지고 나이를 핑계로 슬쩍 잊어버렸다고 둘러대기도 한다.
참 신기하다. 작은 초콜릿 하나와 포장한 짧은 단어 하나가 나를 깨웠다. 내가 보낸 작은 미소나 말과 글들이 어떤 이들에게 행복과 희망 위로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더 알게 했다. 오늘 난 디지털 문명으로 잊고 지내던 편지지를 꺼내 가까운 분들께 편지를 쓰고 짧은 인사를 글로 적어 보냈다. 그리고 작은 선물과 카드도 준비했다. 나의 짧은 글과 정성이 누군가에게 나처럼 큰 기쁨이 되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