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식 칼럼]
1992. 8. 24. 베이징 조어대(釣魚臺)
역사적인 사건, 20년전 8월
최근 국내 신문은 한중 수교 2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사와 칼럼들을 연이어 싣고 있다. 단교된 지 40여 년 만에 수교한 한국과 중국이 수교 후 20년 동안 이룩한 괄목상대할 만한 변화를 그리는 기사들로 차고 넘친다. 숫자로 나타낸 양국의 성장과 변화는 특히 눈부시다.
지난 8월 22일자 이데일리는 “대중(對中) 투자금액은 2011년말 기준으로 수교 이전보다 약 220배 급증했고 투자 업체수도 34배 늘었다. 국내 기업의 국가별 진출 업체 수 비중으로 보면 중국이 42.3%로, 최대 투자국이 됐다. 대중 수출은 1992년 26억5000만달러에서 2011년 1341억6000만달러로 50배 늘었고, 수입은 37억3000만달러에서 864억3000만달러로 23배 증가했다”라고 보도했다.
어느 누구도 한중 수교 후 20년간 이룩한 양국 관계의 긴밀성에 대해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한중 수교의 성과라고 한다면, 당시 양국 수교에 공헌한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년 전 8월 하순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회고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양국간의 수교 성립
1992년 8월 22일 한중 양국은 서울과 베이징에서 “이상옥 한국 외무부장관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첸지첸(錢基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초청으로 1992년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중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관계 정상화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라고 한국 외무부장관의 중국 방문을 동시에 발표했다.
8월 23일 오후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첸지첸은 “양국의 이익인 한중 관계정상화는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통일, 아태지역의 번영과 안정 등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고, 이상옥 장관은 “오랫동안 단절됐던 양국간의 비정상관계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역사적 의의가 있는 한중 수교는 국제정세의 대세에 부응하고 양국민의 여망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양국 지도자들의 높은 정치적 결단으로 가능하게 됐다”라고 화답했다.
마침내 8월 24일 오전, 한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이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정식 서명됨으로써 양국 간의 수교가 성립된다. 그 공동성명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공동성명 전문
①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국민의 이익과 염원에 부응하여 1992년 8월 24일자로 상호 승인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했다.
②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유엔헌장의 원칙들과 주권 및 영토 보전의 상호 존중,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 평등과 호혜, 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 우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한다.
③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하여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측 입장을 존중한다.
④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간의 수교가 한반도 정세의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⑤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
⑥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61년의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따라 각각의 수도에 상대방의 대사관 개설과 공무 수행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빠른 시일 내에 대사를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한다.
수교 당시 성명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중 관계
공동성명의 전문을 빠짐없이 인용하는 취지는 20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중 관계가 수교 당시 합의한 프레임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에서 특히 의미 있는 것은 3항과 5항이다. 수교 과정에서 중국은 대만 문제를 중시했고, 한국은 북한 문제를 중시했다. 3항은 중국과 대만의 외교적 승패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과 대만 간의 외교적 단절을 의미했다. 즉 중국은 같은 분단국인 한국으로부터 ‘하나의 중국’을 인정받는 개가를 올렸다.
이와 달리 공동성명 5항은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즉 5항의 내용은 ‘두 개의 한국’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정적 상태임을 중국이 인정한다는 것으로서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중 공동성명과 조중 우호조약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3항에서 중국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했지만, 5항에서 한국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5항이 채택된 배경과 맥락을 살펴보면 중국이 한중 수교 후 20년간 보여준 외교적 정치적 입장이 한국에 대한 적극적이고 일관된 지지를 표방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양국관계 한 차원 높여야 할 때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모두들 양국의 경제적 관계의 긴밀성과 눈부신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국과 중국의 정치적 외교적 관계는 20년 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생뚱맞은 것 같다. 그러나 한중 수교 20년 이후의 전망과 전략을 논할 때는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한중간의 관계에 대해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서 전략적 정치적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경쟁과 대립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양국간의 관계를 한 차원 높여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20년 전에 합의한 공동성명 5항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5항에서 한중간의 전략적 정치적 관계를 더 한층 발전시키려면 이에 선행하여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 및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한중간에 긴장이 고조될 때 거의 대부분 남북간의 긴장과 대립이 배경이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법무법인 지평지성 상하이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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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지평지성 상하이지사 지사장으로 5년째 근무 중이며 한국 본사에서는 6년간 중국업무를 담당했다. 북경어언문화대학과 화동정법대학 법률진수생 과정을 이수했으며 사법연수원의 초대 중국법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제처 동북아법제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 한중법학회의 이사, 상하이총영사관 고문변호사, 차이나데스크 자문위원, 상해한국상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국내 조선기업의 중국 옌타이시 조선소공장에 대한 설립 자문, 국내 석유화학기업의 중국 난징시 석유화학 합작기업 설립 자문, 국내 건설사나 국내 증권금융기관의 중국 부동산개발과 관련하여 법률자문을 수행한 바 있다. 중국 관련 논문으로는 <소주공업원구 법제에 관한 연구>, <중국의 해외투자 및 한국의 투자유치정책 연구>, <중국 상표관리 종합메뉴얼> 등이 있다. jschoi@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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