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식 칼럼]
중국 浙江고등법원, ‘거절의 예술’ 가이드북 발간
저장성 고급법원이 최근 총 41페이지로 된 <유연한 처리, 거절의 예술-선물거절, 청탁거절, 부탁거절 수책>을 발간해 법관, 법원경찰, 직원에게 배포했다고 해 화제가 되었다. 동방조보(东方早报)와의 인터뷰에서 저장성 고급법원장은 “법관은 거절을 할 줄 알아야 할 뿐만이 아니라 용감하게 할 줄 알아야 하며, 또 거절에 능해야 하고 거절의 예술 또한 익혀야 한다”고 하면서 책 발간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책자에는 △사건 당사자가 당신의 주소지를 묻거나, 사건의 진행 상황을 문의할 목적으로 방문했을 경우 △고향친구가 보내준 지역특산품 안에 선물용 카드나 현금이 들어있을 경우 △휴대폰 통화비용이 저절로 충전되었을 경우 △수년간 보지 못했던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등 법관이 맞닥뜨릴 수 있는 청탁 관련 등 24가지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제시하며, 법관이 이러한 경우 어떻게 청탁을 거절해야 하는지 상황에 맞는 만화까지 곁들여 대처방법을 소개했다. 그 예를 잠시 살펴보자.
#상황
어느 날 당사자는 어떤 경로를 통해 당신의 집주소를 알아내고 사건의 내용을 설명한다는 이유로 당신을 방문했을 경우 당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만약 친지가 직접 당사자를 데리고 당신의 집 현관까지 왔을 경우 당신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처리 건의
단호한 태도로 당사자를 문밖에 세워야 한다. 당사자와 사적으로 접촉하면 안되고 법관은 당사자로부터 어떠한 선물도 받아서는 안된다고 당사자에게 명확히 알려야 한다. 사건은 정상적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동시에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을 이해해 줄 것을 요청하고 또한 법원을 신임하고 법관을 존중해 줄 것을 부탁해야 한다. 만약 친지가 당사자를 집 현관까지 데리고 왔더라도 상기 방법을 참조해 처리해야 하며 동시에 친지에게 법원의 규율규정을 설명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
청렴을 강조한 사회는 부패한 사회 반증
중국 신문의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중국 사람은 인정에 약해 친지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데 특히 법관이 사건과 관련해 부탁을 받으면 공정하게 재판하지 않을 수 있으니 이런 부탁과 청탁에 대해 잘 대처하고 거절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책자를 발간해 구체적인 상황을 예시하며 거절의 예술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인정에 약해 호의로 준 선물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니 어떻게 거절하는 것이 좋은지를 책자까지 만들어 안내한 것이란다.
청렴을 강조하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부패한 사회이다. 법원이 스스로 청렴을 강조했다면 부패한 법관이 있다는 반증이다. 사실 위에서 소개한 거절의 예술 사례는 유연하지도 그다지 예술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24가지 사례를 열거하며 청탁의 예술을 보여준 것만 같다. 어느 나라 법관이든 청탁의 손길에서 벗어나기는 힘든 모양이다. 법관이 청탁에 흔들리면 재판의 공정성을 그르치는 것은 당연지사다. 우리는 종종 중국 법원에 대한 불신의 소리를 듣는다. 법관이 재판 도중에 사건 당사자의 변호사와 사담을 한다거나, 불쑥 일어나 재판정 자리를 비우고서 사건 당사자의 변호사를 따로 만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의심이 든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법관과 변호사 사이에서 단지 말만 오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영화 ‘부러진 화살’과 사법부의 윤리의식
재판관에게는 어느 직역보다 직업윤리가 강조된다. 그래서 재판관은 사실관계와 법리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배운다.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법관이 사건 당사자와의 친소 관계나 당사자가 보낸 선물에 현혹되어 편파적으로 재판한다고 생각한다.
연초에 한국에서는 배우 안성기가 주연한 ‘부러진 화살’이라는 법정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어느 사립대학교 교수의 재임용거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재임용거부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해직교수가 담당 재판부의 재판장이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 재판장에게 제대로 재판하라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석궁을 쏴 재판장의 복부에 상해를 입혔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어 받은 형사 재판 과정을 그린 영화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으나, 당시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 영화는 실제와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심산이었다. 영화에서 피고인인 안성기의 변호사는 형사 재판 항소심에서 피고인은 석궁을 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와이셔츠에 묻은 혈흔은 피해자나 검찰이 사후에 조작했을 것으로 의심되니 피해자의 혈흔에 대해 진위를 확인하는 감정을 신청했다.
당시 감정 신청을 한 변호사에게 재판장 역을 맡은 문성근은 매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감정 신청을 기각했던 것이 인상적이다. 문성근의 돋보이는 연기력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 법원에서 있었던 것 같은 리얼리티 때문인지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안성기의 변호사는 재판장과는 일면식도 없고 어떠한 연고도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는 재판장과 같은 법관이었다. 그런 점에서 변호사는 법원에 대한 청탁이나 의사소통 차원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안성기는 예시 당초 재판부가 자신에게 불리할 재판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법원과 처절하게 싸울 수 있는 반골 기질의 인권변호사를 찾았던 것이다.
흔들리는 사법부, 한국과 중국의 차이
우리 나라 역시 전관예우 문제 등으로 법원이 불신을 받고 있고 법관의 출신지역과 학교에 따라 변호인을 선임하려는 경향이 강하니 재판이 친소관계에 따라 흔들린다고 믿는 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 대법원은 일체 그와 같은 일이 없다고 부인함에 반해, 저장성 고급법원은 탁의 사례와 거절의 방법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중국 법원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지평지성 상하이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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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지평지성 상하이지사 지사장으로 5년째 근무 중이며 한국 본사에서는 6년간 중국업무를 담당했다. 북경어언문화대학과 화동정법대학 법률진수생 과정을 이수했으며 사법연수원의 초대 중국법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제처 동북아법제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 한중법학회의 이사, 상하이총영사관 고문변호사, 차이나데스크 자문위원, 상해한국상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국내 조선기업의 중국 옌타이시 조선소공장에 대한 설립 자문, 국내 석유화학기업의 중국 난징시 석유화학 합작기업 설립 자문, 국내 건설사나 국내 증권금융기관의 중국 부동산개발과 관련하여 법률자문을 수행한 바 있다. 중국 관련 논문으로는 <소주공업원구 법제에 관한 연구>, <중국의 해외투자 및 한국의 투자유치정책 연구>, <중국 상표관리 종합메뉴얼> 등이 있다. jschoi@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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