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식 칼럼]
ISD 그리고 한•중 투자보호협정
한•미 FTA 체결과 비준을 둘러싼 논란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특히 한•미 FTA 중 한 부분인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즉 ‘투자자-국가 분쟁제도’는 한•미 FTA가 체결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할만한 중요 사안으로 인식되었다. 여야간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었고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는 ISD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사법주권을 포기하는 매국적 행위라고 결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동안 한•미 FTA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평범한 시민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한•미 FTA에 대한 국회 비준이 여당에 의해 강행 처리되었지만, 정부의 입장은 ISD 조항에 대해서는 재협상하겠다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한•미 ISD 대립된 두 시각
한•미 FTA 중 ISD 조항에 대한 두 가지 대립된 시각은 ‘ISD는 국제규범이다’ vs ‘ISD는 한국의 공공정책을 무력화한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고 달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분쟁해결제도에 지나지 않은 ISD에 대해 이렇듯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법률가 입장에서 볼 때도 드문 일이다. 일반적으로 ISD는 투자유치국이 투자조약상 규정된 투자자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외국투자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국제중재(경우에 따라서는 투자유치국의 법원과 국제중재기구를 선택함)를 신청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ISD는 양자간투자협정(BIT) 혹은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도입하고 있는데 그 연혁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 진출할 때 개발도상국의 법률 규범과 분쟁해결제도를 불신하여 제3국의 분쟁기구에서 국제적으로 승인된 규범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태동하였다고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ISD는 설사 국제적 규범이라고 하더라 한•미간에는 선진국인 미국 입장에서 선호된다고 보는 것이 보다 사실에 부합할 것 같다. 한•미간 투자액을 비교할 때 미국의 대한투자액보다 한국의 대미투자액이 보다 많다고 하여도 ISD가 한국측에서 이용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제적 규범은 곧 미국 스탠더드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과연 미국 친화적인 국제중재기구가 미국의 투자유치정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고 한국의 투자유치정책이 국제적 규범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보다 높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할 것이다.
아무튼 정부가 비록 국회에서 한•미 FTA에 대하여 비준되었다고 하여도 ISD 조항에 대해 재협상을 한다고 하니 이제 그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설사 정부의 재협상이 여론의 압력에 의해 추진되든 아니면 정부의 독자적 정책 판단에서 추진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정치의 과잉 시절에서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 논쟁을 방지하는 현명한 길일 것이다.
한•중 ISD 1992년 체결
한•미 FTA 체결 과정에서 ISD가 뜨거운 이슈로 제기될 때 필자는 이 ISD가 한•중 간에 채택된다면 상대적으로 한국측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관련 자료를 살펴보다가 한•중간에 ISD가 양자간 투자협정으로 지난 2007년 9월 8일 시드니에서 이미 체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협정의 정식 한글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간의 투자의 증진 및 보호에 관한 협정’이라는 긴 이름이다. 이 협정은 1992년 9월 30일에 체결된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간의 투자의 증진과 상호보호에 관한 협정’을 새로 개정한 것이니 그 시원은 한•중 수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ISD가 한•중간에 이미 채택되었음에도 왜 일반적인 인식이 부족할까. 명색이 법률가라는 필자조차 그 동안 모르고 있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중 투자보호협정에서 ISD가 유명무실한 예외조항이 있어서 실효적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ISD를 활용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판단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홍보부족인지 그 원인과 실태를 보다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중 투자보호협정의 주요 조항
한•중 투자보호협정의 주요 조항을 살펴보면, 내국민 대우, 최혜국대우, 최소대우기준, 투명성조항, 수용 및 보상, 이행요건부과금지 등 일반적인 ISD 내용이 포괄되어 있다. 다만 한•미 FTA의 ISD와 비교하여 보다 많은 예외조항이 있어 상대적 투자유치국인 중국이 불이익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국인 한국 입장에서 ISD를 활용하는 것이 기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특히 최근 중국이 투자유치정책을 변경하여 외국투자자에 대한 우대정책을 철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압박을 가하여 외국투자자를 퇴출하려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ISD를 통해 중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제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외국투자자를 퇴출하는 사례는 그 배경과 이유가 다양하여 쉽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 배후에 정부 정책의 변경이 도사리고 있다고 볼 만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경우 정부에 의한 간접 수용이라고 볼 수 있어 한•중 투자보호협정의 수용 보상 원칙에 의한 보호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FTA 체결과 비준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다가 한•중투자보호협정을 살펴보는 것이 다소 뚱딴지 같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는 필자가 중국 상하이에서 있기 때문이라고 궁색하게 변명해본다.
법무법인 지평지성 상하이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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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지평지성 상하이지사 지사장으로 5년째 근무 중이며 한국 본사에서는 6년간 중국업무를 담당했다. 북경어언문화대학과 화동정법대학 법률진수생 과정을 이수했으며 사법연수원의 초대 중국법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제처 동북아법제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 한중법학회의 이사, 상하이총영사관 고문변호사, 차이나데스크 자문위원, 상해한국상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국내 조선기업의 중국 옌타이시 조선소공장에 대한 설립 자문, 국내 석유화학기업의 중국 난징시 석유화학 합작기업 설립 자문, 국내 건설사나 국내 증권금융기관의 중국 부동산개발과 관련하여 법률자문을 수행한 바 있다. 중국 관련 논문으로는 <소주공업원구 법제에 관한 연구>, <중국의 해외투자 및 한국의 투자유치정책 연구>, <중국 상표관리 종합메뉴얼> 등이 있다. jschoi@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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