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이 소설을 썼던 중국 근대 청나라 말기에 밖으로는 열강의 침입으로, 안으로는 혁명으로 나라가 무척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며 관리들의 부패가 무척 심했다. 백성들은 관리들의 핍박에 시달렸고 민심은 흉흉했으며 나라는 점점 쇠퇴일로로 치달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작가들이 소설의 힘을 빌어 관료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폭로하였고 소설을 통해 대중들을 각성시켜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하였다. ‘라오찬 여행기’는 바로 이와 같은 견책소설(譴責小說)의 대표작이다. 견책소설이란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 봉건 지배계층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질책하는, 중국소설의 사회비판적 경향을 이른다. 루쉰은 청말 4대 견책소설의 하나로 이 작품을 꼽았다.
이 소설의 지은이 류어(刘鹗)(1857~1909)는 강소성(江蘇省) 단도(丹徒), 즉 현재의 진강(鎭江)의 관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에 다재다능하고 학자로써의 능력이 아주 뛰어났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심지어 매국노라는 오명까지 쓰게 된다.
그는 1888년 황하가 넘쳐 큰 수재가 나자 직접 인부들을 진두지휘하여 치수에 성공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고 갑골문 연구에도 크게 이바지 했다. 1903년 유일한 소설인 ‘라오찬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탈고했고, 1905년에는 ‘속집’을 썼다. 1907년 위안스카이(袁世凱) 정부에 의해 정부미를 사사로이 매매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령이 내려져 도피생활을 하다 1908년에 체포되어 신강(新疆)에 유배되었고 이듬해인 1909년에 유배지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노찬유기(老残游记)’ 라오찬, 즉 노잔(老殘)은 늙고 힘없는 사람, 유기란 여행자의 기록을 뜻하는데, 이 책은 늙어 힘없는 관찰자가 각처를 떠돌아다니며 견문한 사실을 적은 여행의 기록이며, 저자 자신의 행적을 소설화한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떠돌이 의사 라오찬은 중국 각지를 다니면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한다.
그는 병자들의 신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패로 가득한 사회의 병폐를 고발하고 백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지방을 여행하면서 여러 뜻있는 사람들과 현실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혹독한 관리는 실제 인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전반에 나오는 위센은 산동순무를 지내면서 의화단 사건 당시 다수의 기독교를 학살한 위센이고 후반에 등장하는 깡삐는 군기대신을 지낸 만주 귀족 출신의 깡이가 모델이라고 한다.
그들은 스스로 청렴 결백하다는 잘못된 자기확신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혹독하게 백성들을 탄압했다. 저자는 이것을 탐관오리보다도 더 나쁜 관리로서, 출세욕과 아집이 뒤섞여 모순을 야기하는 관리 사회의 전형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라고 고발하고 있다. 이 외에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황하강의 뱃길을 뚫기 위해 얼음을 깨는 백성들의 모습이나 기녀들을 통해 들려오는 지식인들의 가식과 허위에 대한 폭로, 그리고 부모의 권력에 의존해 횡포를 부리던 쑹 이야기 등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상을 고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체와 사실적이면서도 정감 어리게 묘사하고 있다.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으로 뽑힐 정도로 이 소설은 중국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도 아시아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당대의 사상과 문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다소 낯선 문장들이 종종 등장 할 수 있지만, 몇몇 문장들을 제외한다면 속도감 있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고전소설 초보자들에게도 강력 추천한다.
▷고등부 학생기자 정재현(신홍차오 중학 12)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