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 칼럼]
위기의 패러독스
또다시 위기다. 세계 자본시장은 지금 미국발(發) 위기로 초긴장 상태다. 우리 서민들의 삶도 위태롭다.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위기인가. 그 역사를 반추해본다.
2001년 12월 11일, 세계무역기구(WTO)는 143번째 새 회원국을 맞는다. 중국이었다. 약 3억5000만 명의 노동자가 이날 세계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편입된 것이다. 위기의 ‘태동’이었다. 이들이 만든 저가 상품은 서방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대신 거대 달러가 중국으로 유입됐다. 중국 인민은행은 달러를 다시 미국에 빌려줘야 했다. 그 많은 돈을 받아줄 안전 투자처는 미국 국채 시장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절약을 모르는 미국인들은 꾼 돈으로 흥청망청 소비를 즐겼다. 부동산 시장이 달아올랐고, 그 버블이 터진 게 바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였다. 그 위기가 지금 재정 쪽으로 번지면서 세계 경제를 할퀴고 있다.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위기는 싹튼다. 지난 10년이 그랬다. 중국은 프랑스•영국•독일•일본 등을 차례로 제치며 G2 반열에 올랐다. 2009년 독일로부터 최대 수출국 자리를 빼앗았고, 이듬해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에 올랐다. 반면 기존 강국 미국은 무역적자•재정적자에 시달리며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다. 중국의 급성장과 미국의 쇠퇴, 그 힘의 균열 속에서 위기가 자란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파워 시프트(권력 이동)’ 과정에서 대공황(1929년)이 발생했듯 말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94년 1월 1일. 중국은 환율제도를 개혁한다. 정부 고시 환율과 시장 환율의 통합으로 위안(元)화 환율은 달러당 5.8위안에서 8.7위안으로 뛰었다(평가절하). 또 다른 위기의 ‘태동’이었다.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 중국 상품은 세계 시장을 파고들었다.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상품이 먼저 밀려났다. 이들 나라는 무역부문에서 달러 유입이 줄자 이를 보충하고자 자본시장을 열었다. 투기성 자금 유입으로 자산시장에 거품이 생겼고, 그 버블이 터진 게 바로 아시아 외환위기였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아시아 지역 힘의 균열이 위기를 부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중국은 당시 시장의 평가절하 압력에도 불구하고 위안화 가치를 지켜냈다. 주변국은 ‘중국이 버텨준 덕택에 위기를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중국이 ‘아시아 다거(大哥•큰형)’로 등장한 것이다. ‘위기의 패러독스(역설)’다. ‘잃어버린 10년’을 헤매고 있던 일본은 중국의 부흥을 바라만 봐야 했다.
또다시 위기다. 세계는 지금 중국에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의 위축으로 인해 발생한 소비의 공백을 중국 내수시장이 메워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 역할론이다. 중국이 침체에서 허덕이던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 말 상황을 연상케 한다. ‘위기의 패러독스’는 반복될 것인가? 이 위기 후 중국의 위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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