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속의 유럽 白公館
상하이 서쪽에 위치한 펀양루(汾陽路)에는 역사 깊고 화려한 별장들이 줄지어 서있다. 펀양루(汾陽路)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푸른 잎의 오동나무들이 줄지어 서있고 한적한 카페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상점이 늘어 서있었다. 특히 큰 오동나무들이 우거지고 주변 환경이 우아한 펀양루(汾陽路) 150호에는 바이궁관(白公館) 이라 불리는 하얀 별장 한 채가 소박하지만 깊은 세월을 보여주듯 무게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바이궁관(白公館)의 외관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마치 고대 그리스 로마 건축물과 흡사했다. 그리스 신전에서만 보았던 하얀색 기둥들과 하얀색 지붕의 이국적인 느낌은 지나가던 사람도 발길을 멈추고 그 운치에 반하기에 충분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상하이 도시 한복판에 평화로이 우거져있는 나무들을 따라 보이는 이국적인 건축 양식은 마치 나로 하여금 조용한 고대 유럽 한복판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상하이의 10대 양옥 중 하나인 바이궁관(白公館)의 이름의 유래는 중국 해방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해방 이전에 백씨성을 가진 고급 장교가 그 곳에서 잠시 살았다고 한다. 그 이유로 지금까지 바이궁관 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바이궁관에는 프랑스의 귀족들이나 유태인들 등 대부분 돈이 많은 부자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자연이 아름다운 바이궁관 주변에는 특히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뛰어난 환경 때문인지 바이궁관 길 옆을 걸을 때에는 낙엽이 떨어지면서 물소리와 바이올린 켜는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였다. 흥미롭게도 펀양루(汾陽路)는 곳곳에 음악 학원과 악기 상점이 많아 상하이의 대표적인 음악의 거리로도 불리고 있었다.
긴 역사를 가진 바이궁관의 주인이 계속 바뀌어 가듯 바이궁관의 기능도 계속해서 변하여 갔다. 중국 해방 전까지는 주로 주거용으로 쓰였지만, 해방 이후로는 상하이시 인민정부에서 이 아름다운 별장을 사들여 상하이 갤러리와 상하이 극장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개혁 개방 이후에 상하이 극장은 화이화이중루로 이전되었고 그 대신 바이궁관에는 술집이 들어서게 된다. 밤만 되면 네온싸인 불빛과 함께 필리핀 극단들이 밤새도록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이궁관에 모여 술을 마셨다고 한다.
지금은 고급 일본식 부페가 들어서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곳은 결혼식 피로연 장소로도 인기만점인 것 같았다. 지금 바이궁관을 방문한다면 긴 역사를 가진 낡은 건물을 보기보다는 이제 막 지은 것 같은 새로운 건물을 볼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바이궁관은 예전의 중요한 건축의 특색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다시 새롭게 재건축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건축에도 불구하고 정말 긴 역사의 시간동안 지금까지 존재해온 바이궁관만의 매력과 위엄은 아직까지 살아 숨쉬는 듯 했다.
▷고등부 학생기자 배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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