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상해의 날씨는 찌는 듯이 덥고, 위성TV 에서 보이는 우리나라도 마치 온 나라가 물에 잠겨 잇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피해가 심하고, 많은 가정의 가장들은 불안한 경기 속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들이 처절하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우리 가정도 역시 많은 부분에서 절제하고 규모 있는 생활을 하려고 애쓰지만 때론 지칠 때, 바보같이 가장 힘이 되어야 할 가족에게 더 마음의 상처와 짐을 지어줄 때도 있다.
오래 전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다. 한참 동안 못쓰는 경우도 있지만 내 감정이 특별한 날은 더 마음이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쁘고 즐거울 때 보다 슬프거나 외로울 때 또 마음이 아프거나 상했을 때 일기를 쓰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마도 마음 편히 쏟아 놓을 수 있는 감정의 도구로 자연스럽게 찾게 된 것 같다. 때로는 책을 읽다가 시를 감상하다가 감동이 되는 구절을 적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고 다시 보게 되면 유치하기가 짝이 없어 없애버리곤 했다.
‘뒤뜰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놓고 아버지가 돌아 오셨을 때
어머니는 무 한쪽을 예쁘게 깍아 내셨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 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으시는데
환히 들어난 아버지 이마에 흘러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어두워진 산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 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하셨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었다.’
임길택님의 ‘저녘 한때’란 시이다.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가 예전에 옮겨 적은, 이 시를 발견했다.
시의 주제는 아버지 이다. 아마 그땐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리움에 감동이 전해 졌을텐데 오늘은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아버지와 오늘아침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바로 ‘아버지’ 그 모습이었다.
가난했지만 아버지의 자리가 있었던 예전과 풍요롭지만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있는 듯한 현대인의 생활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허함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때론 아버지의 자리에 나의 이기심과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을 때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 오늘은 특별히 우리 집의 주인 인 아버지를 위해서 저녁을 준비하고 싶다.
우리 가정의 모든 소리는 그것이 의미 없이 지나치는 일상의 소리일지라도
아버지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를 ....
칭푸아줌마(pbdmam@hanmail.net)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