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봐라~ 너도 별 수 있을 줄 알어?” '난, 설마 안 그러겠지~. 아니, 난 절대로 안 그래야지'하던 시절이 얼마 전만 같은데, 이 말이 자꾸만 새록새록 머리에 되새겨지기 시작하는걸 보니, 새삼 세월의 유수함이 느껴진다.
스포츠센터 락커함 열쇠를 팔찌인양 하루 종일 차고 은행이며, 슈퍼며 다니질 않나, 내 번호가 아닌 엉뚱한 락카함에 소지품을 넣고선, 나중에 내 물건이 없어졌다고 소란을 피워 망신살을 당하질 않나, 이 실수를 조금이나마 위로 받아 볼 모양으로 가족들 앞에서 떠들어대다가, 괜시리 교양없이 덜렁대기만 하고, 아무 생각도 없는, 생물학적 속성만 남아있는 그야말로 목소리만 큰, 한마디로 '주책맞은 아줌마'로 다시 한번 낙인만 찍히고 만다.
그래도 아줌마 자존심에, 이전에 엄마나 주위의 언니들이 하던 말을 앵무새마냥 반복하며 무안함을 벗어나 보려 한다. "그래, 너도 늙어봐라, 넌 안 그럴 거 같지? 나도 너 나이 땐 안 그랬거든. 너네들 키우느라 이렇게 된거지" 앞뒤가 안맞는, 그야말로 이런저런 억지를 늘어놓다가, '그 얘길 우릴 재미있으라고 하시는 거유~'하는 가족들의 눈길에, 서운한 맘 반, 서글픈 맘 반으로 그만 입다물어 버리곤 한다.
문득, TV 박카스 광고에 나오는 노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냉장고에서 할머니 휴대폰을 발견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살짝, 당신 휴대폰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 거기 식탁 위에 있지 않느냐는 말에 할아버진 할머니의 휴대폰을 살며시 식탁 위에 갖다 놓아 준다. 할머니의 건망증조차도 품어줄 수 있는 할아버지의 큼직한 사랑이 한눈에 들어와 우리를 한 순간 따뜻하게 해주는 장면이다.
최근 들어 조금씩 조금씩 건망증의 쇠사슬에 끼어들어가고 있는 나로서는, 내 뇌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명장면이 되어버렸다. 이전에 언젠가 엄마랑 친척집을 같이 방문했던 기억도 문득 난다. 어느 아파트에 들어섰는데, 그때까지 엄만 몇동 몇호를 말하지 않으셨다. 답답해서 자꾸 주소를 물어대는 나에게, 엄마는, 근처에 가면 생각나신다며 내리 앞장서 걸으시기만 하셨었다.
감(?)으로 집을 찾아가시는 것이었다. 몸은 감따라 움직이는데, 머릿속에 맴도는 숫자를 빨리 끄집어 내기가 못내 힘드셨던 것 같다. 그땐 정말이지 이해 못할 상황이었는데, 그때의 엄마만큼 살아버린 내모습이 이젠 어느새 엄마를 그대로 닮아가려 하고 있다. 아니 이젠, 엄마랑 같이 서로의 건망증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하소연하는 딸한테 엄마는, '그건 아무것도 아닐게다. 더 살아봐라' 하신다.
실제나이는 신분증에 기재된 숫자에 지나지 않고, 우리들에겐 '체감나이'가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들 하는 추세이다. 실제로, 마케팅담당자들도 체감나이에 포커스를 맞출 때가 시장성에 있어 신뢰성이 높고, 성공률도 훨씬 높다고들 말하고 있다. 마음은 체감나이로 세월을 거슬러 그대로이고 싶어하는데, 나날이 무거워지고 있는 이 몸덩어리와 느슨해진 틈 사이로 비비고 들어오고 있는, 나의 반쪽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이 몹쓸 건망증을 세월에 묶어둘 수 없음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