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네요."
한중 수교 6개월 후부터 지금까지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는 K씨, 15년 전 상하이를 떠올리며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한다. "93년 당시만 해도 저녁 6시만 되면 호텔을 제외하고는 상가가 거의 문을 닫아 도시가 컴컴해졌어요. 지금의 구베이 신취의 아파트 건물도 94년에야 지어지기 시작했구요. 상하이마트 주변은 논밭이었지요. 수교 후 1~2년 동안만 해도 상하이의 한국 교민이 3~400명에 지나지 않아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였지요."
상하이에서 이젠 생활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K씨는 다만 12~13년 전에는 야채가 1근에 2~4마오, 쌀은 8~9마오, 돼지고기 2.6~3.6 위엔 정도여서 10위엔만 가지고 시장을 가도 야채와 생선, 돼지고기, 과일까지 사고도 돈이 오히려 남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위엔으로도 원하는 것을 사기가 힘들어 아쉽다는 반응이다.
상하이 교민사회의 비약적 발전은 단순한 수치 비교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93년 뤼구비에수(绿谷别墅)에서 6가정으로 시작한 상하이 연합교회는 현재 3천명의 신자들이 함께 하는 교회로 성장하였고, 94년 12월 한중 정기노선으로 아시아나에서 홍차오-김포만을 운항하던 항공편은 한국과 중국 국적의 항공기들이 각국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93년 한국 음식점으로는 처음으로 홍차오(虹桥)호텔에 한성주가가 오픈한 이래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 200여 개의 한국식당이 성업 중일 정도로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지표는 학생 수 증가로도 알 수 있다. 99년 9월 48명의 학생으로 개교한 상해한국학교는 현재 1천여명의 학생들이 재학, 해외한국학교 중 최대인원이다. 또한 2002년 중국의 부동산 대외 개방 이후 구베이(古北)와 롱바이(龙柏)를 거쳐 최근엔 홍췐루(虹泉路)까지 이곳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중 수교 전인 90년도에 중국에 온 교민사회의 산 증인인 한국상회(한국인회) 이평세 고문은 ``교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사건 사고도 빈발하고 있어 중국인의 눈에 어글리 코리언으로 비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한국 교민사회 자체의 정화 운동이 필요한 것 같다''며 중국법의 테두리내에서 합법적이고 정당한 활동을 당부했다.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그 동안 교민사회가 질적 내실은 외면한 채 양적으로만 팽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뒤돌아 볼 때이다.
▷나영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