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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이 in 상하이] 우리 설날

[2024-02-22, 18:25:19] 상하이저널

어릴 적 외국에서 살다가 전학 온 친구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나는 학창시절 한 번도 해외에 가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갈 무렵 아빠의 일본발령으로 나는 처음 해외를 가게 되었다. 그것도 여행이 아닌 거주를 위해서. 

18년만에 처음으로 간 외국에서 그 나라의 말도 모르는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나는 당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로 인생 그 어느때보다 총명했으며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그후에도 대학 4학년때 캐나다로 영어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넉넉한 인심의 호스트 패밀리와 함께하면서 영어에 대한 부담보다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여행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누렸다. 외국에서 사는 즐거움을 만끽한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도 해외에서 사는 경험을 선물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고, 계획대로 나는 해외에서 일하게 될 남자와 결혼해서 내내 해외에서 살고 있다. 이곳 상하이에서 말이다.

남편과 신나게 아이들을 데리고 상하이로 왔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이곳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해 마트에서 울기까지 한 그때서야 나의 부모님이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얼마나 고단하셨을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로서의 해외 생활은 생각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거주하였었더라면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 이 곳에서는 매우 귀중한 것들이 되었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부모님의 도움, 친구들과의 만남, 병원진료, 자녀들의 무상교육 등 많은 혜택을 뒤로하고 나 스스로 선택한 해외생활이니 감내하며 살고 있지만, 주변에 도울 손이 한꺼번에 줄어드니 내 책임과 역할이 더욱 커졌다.

그 중에도 가장 아쉬운 때는 “명절”때이다. 우리 아이들이 과연 “명절”에 대해 제대로 알기나 할까? 한국학교 다니지 않는 아이라면 더욱이나 명절이라는 단어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며느리로서 명절 나기는 다소 피곤할 수는 있겠지만, 어릴 적 명절이면 친척들이 모여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웃고 떠들던 그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서먹해하다 가도 또 이내 친해져서 집으로 돌아갈 때는 엄마 뒤에 숨어서 징징거리던 그 때.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지갑이 열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둑해진 내 지갑을 보며 한꺼번에 부자가 되었던 그 때. 우리 아이들에게는 ‘명절, 그 때’의 기억이 없다. 아이들에게 명절의 기억을 심어주기 위해 설날만이라도 다 같이 앉아서 만두를 빚고, 전을 부치고, 한복을 입혀 동네 어른분들께 세배를 보내기도 했지만, 한국에서의 그 명절 느낌은 발톱만큼 따라가기 어렵다.

명절은 자고로 다 같이 모이는데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올 해 설날도 우리 가족은 상하이에서 지낼 계획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나만큼 커버려 작년에 입었던 한복이 맞지도 않지만, 그 만큼 만두 빚을 손이 야물어졌다. 상하이에서 보내는 또 한 해, 설날을 타국에서의 쓸쓸하게 또는 씁쓸하게 보낼 다른 가족들에게 새해 안부인사와 함께 손만두라도 전하며 아이들과 명절의 의미와 그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에리제를 위하여(khe30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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