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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_대상]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2020-12-12, 11:10:29] 상하이저널
[코로나19 체험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현관문 앞, 체중계가 보인다. 궁금하다. 내 몸이 아닌 코로나 바이러스를 저울 위에 올려 놓으면 그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코로나’는 나의 일상을 얼마나 무겁게 만들었을까? 

결혼 후 10년, 시험관 시술 3번 후, 기적처럼 태어난 딸, 한나는 혼자 한국에 있다. 올 해 만 5살 한나는 올 초, 설을 보내기 위해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갔다. 중국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 한나 이모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직장을 다녀야 하는 아내는 혼자 상해로 돌아 왔다. 2~3주 후 내가 한국으로 가서 한나를 데리고 올 ‘작정’이었다. 4월 1일 항공편을 구했다. 3월 27일, 중국은 갑자기 외국인의 입국을 봉쇄했다. 그 후로도 비행기 티켓을 몇 번 더 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기존의 모든 거류허가 비자를 취소시켰다. 애가 너무 보고 싶다고 아내는 매일 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나를 빨리 데리고 오라고 한다. 나의 그 ‘작정’을 후회했고 코로나를 원망했다. 코로나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한나 없는 하루는 늘 뭔가가 비어 있는데 오히려 무거운 날이 되었다.  

# 3월, 상해 거주 교민 한 명이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비자 기한 만료, 경제적인 상황도 좋지 않고 심지어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 분은 코로나로 인한 거주지 봉쇄 때문에 외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자 혼자 집 안에서 눈을 감았다. 한국 영사관 측에서 시신을 수습했다. 

이모에게 맡겨진 한나는 영상통화를 하면 “이 세상에서 이모가 제일 좋아”라고 외친다. 우리에게는 “빨리 전화 끊어, 나 바빠”라는 말만 한다. 한나는 이모 집에서 한 달 동안 머물렀다. 하지만 이모의 큰딸이 고3이다. 고3 수험생 집안에 5살 짜리가 계속 뛰어다니고 장난을 걸고…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한나 이모는 고3 딸을 뒷바라지하며 부모를 떠나 온 조카를 극진히 돌봐주었다. 한나는 한 달 후, 포항 외할머니 집으로 몸을 옮겼다. 한국 가는 비행기 티켓은 따야 하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내가 한국으로 갈 수도, 한나가 상해로 돌아 올 수도 없다. 300일을 뱃속에 품고 낳은 딸을 아내는 어쩌면 그 뱃 속에 품었던 날 보다 오랜 기간 마음으로만 품어야 할 수도 있다. 아내는 울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가 직접 한나를 데리러 한국으로 가겠다고 한다. 장모님께서 “코로나 오래 안 갈 것이다, 한나 적응 잘하고 있다”며 말리셨다. 

# 4월, 교민 한 분의 어머님이 한국에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고3 수험생의 어머니이기도 한 이 분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어머니의 모습을 볼 방법이 없다는 충격으로 혼절하였다. 아는 지인 몇 명이 상해 한인교회 예배당에 모여 추모 예배를 드렸다.          

외할머니 집에 머무르는 한나와 영상통화를 한다. “난 외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바뀌었다. 아내는 한나가 자기 없이 잘 살고 있다는 말에 그 말이 사실이 아닐 거라며 불쌍하다고 또 눈물을 흘린다. 외할머니는 몸도 좋지 않으시고 이미 손자, 손녀 2명을 키우고 계신다. 어쩔 수 없이 한달 후 한나는 다시 경기도 수지의 친할머니 집으로 갔다. 몇 번의 ‘이사’를 했지만 한나는 단 한번도 ‘엄마 아빠 빨리 와서 나 데려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식을 만날 수 없는 우리 부부는 모든 원망을 한군데로 돌렸다. 코로나 때문에! 한나는 무엇을 원망하며 버티고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한나와 영상통화를 했다. “난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 여기 할머니 집에서 대학까지 다닐 거야”라고 말하는 한나의 단발이었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등의 중간까지 내려와 있었다. 수지에서 결국 한나는 한국의 유치원에 등록했다.  

# 9월, 50대 교민 한 명이 대동맥에 문제가 생겨 상해 한 병원에서 12시간에 걸쳐 인공동맥 교체 및 접합 수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맸다. 상해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어 돌봐줄 가족이 없다. 대학 동문들이 1박 2일씩 조를 짜서 병실을 지켰다. 

7개월이 지났다. 한국상회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전세기 소식을 들었다. 한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한국으로 가서 2주 격리한 후 비자를 발급받고 한나와 함께 상해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장담할 수 없다. 마침 한국상회 측에서 아이를 한국 공항에서 상해까지 데리고 와 주실 분을 어렵게 찾아 주셨다. 이제 한나를 설득하는 것만 남았다. 5살 한나가 처음 만나는 분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낯선 제안에 동의할 지 자신이 없었다. 이모가 일단 한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한나야 엄마 아빠 만나러 상해로 가려면 혼자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데 어때?” 한나는 조금의 주저함 없이 바로 답했다고 한다. 

“이모 나 갈게. 나 혼자라도 갈 거야” 

한나는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비행기 날짜가 정해 진 후 한나는 할머니 집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사촌 형제들, 유치원 친구들을 포함해서 외부 사람들을 절대 안 만난다고 했다고 한다. 혹시 누군가를 만나서 코로나에 걸리면 엄마 아빠가 있는 상해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집 안에만 있겠다고 했다고 한다. 7개월 동안 한번도 엄마 아빠를 찾지도 않고 보고 싶다는 말도 안 했던 한나였다. 상해에서도 준비를 서둘렀다. 2주간 내가 한나와 함께 호텔에서 격리를 할 수 있도록 한국상회 측에서 상해시의 허가를 받아주셨다. 

223일이 지났다. 격리 될 호텔의 입구에 버스가 도착했다. 한나가 커다란 인형을 하나 손에 들고 내렸다. 한나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만졌다. 꿈에서 잡은 손보다 훨씬 더 따뜻했다. 한나는 울지 않았다. 호텔 주위에 둘러 친 노란 선 밖에서 지켜보는 한나 엄마는 눈물 가득한 두 눈으로만 딸을 만지고 있었다. 한나는 “아빠 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는 게 너무 싫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한나가 불쌍하다며 울었다고 한다. 한나를 떠나 보내며 이모가 울었고 5개월 동안 키워 주셨던 친할머니는 대학까지 다니겠다는 약속을 한 한나와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서 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너무 기뻐서 우셨다고 한다. 손녀가 드디어 엄마 품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기뻐서 우셨다고 한다. 나는 우는 사람이 되기 싫어 눈물이 눈가를 벗어나지 않게 한 채, 격리해야 하는 호텔방으로 이동했다. 격리 2주 후 한나는 드디어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10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한나가 싫어한다는 ‘우는 사람’, 그것도 대성통곡하는 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5살 딸과 생이별을 하고 사람들 때문에! 그 딸을 223일 만에 다시 만났다. 코로나는 내 옆의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남’은 나에게 코로나를 전염시킬 수 있는 두려운 대상이었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며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저주였다. 하지만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남’의 도움들이 나에게 넘쳐났다. 교민들을 위해 상해시와 오랜 협상을 하고 전세기 일정을 잡고 아이를 데려다 줄 분을 수소문해주신 한국상회, 처음 만나는 5살 한나가 낯설어 할 까봐 인형을 사서 손에 쥐어 주시고 비행과 공항 검색대 통과를 함께 해주신 아주머님, 격리하는 호텔에 한국 식품들을 제공해주신 많은 한국기업들, 그 식품들을 포장하고 방으로 배달해주신 자원봉사자 분들, 딸과의 헤어짐을 나보다 더 안타까워 하시고 걱정해주셨던 많은 분들. 사람들 덕분에! 딸과 223일 동안의 헤어짐은 두렵고 예민한 기억이 아닌 단단하고 환한 추억이 되었다. 결국 코로나의 무게를 덜어 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었다. 

한나를 체중계에 올려보고 싶다. 한나에게 코로나의 무게는 과연 얼마였을까?     

김현철(상하이 교민)


한나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한나와 한나 부모님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을 피해 은신처에서 2년 넘은 시간을 숨죽이며 지내야 했던 안네, 그 안네에게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디게 해준 일기장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안네가 일기장을 쓰던 시대와 코로나가 휩쓸고 있는 지금의 시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마음껏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없고 마음껏 나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없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마음 깊숙한 곳에 분노와 좌절이 늘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종이 위에 적어내면서 견딜 힘을 찾고 불쑥 폭발하거나 주저 앉지 않도록 다잡는 일기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국이 아닌 타국에서 마주하고 있는 코로나의 무게는 상하이 교민들에게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 입니다. 한나의 사연은 우리 모든 상하이 교민들의 생존기일 것입니다. 상해한국상회, 한국기업, 자원봉사자 분들이 있어 한국 교민들이 견디고 격려하고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보다 더한 아픔이 없고 누구보다 덜한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소중한 것들에게 다시 한번 눈길을 건네며 우리 모두 코로나 덕분에 한 뼘 더 성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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