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법원 재판 과정 웨이보 통해 공개
"왕리쥔이 미국영사관으로 도망친 이유는 내 아내를 몰래 흠모하다 나에게 발각됐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지도부 진입이 유력한 '태자당의 황태자'에서 한순간에 죄수로 몰락한 보시라이(64) 전 충칭시 당서기가 재판에서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과 관련된 폭탄발언까지 서슴치 않으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법정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재판 5일째 마지막 심리가 진행된 26일, 지난시 중급인민법원 피고인석에 앉은 보시라이는 심복인 왕리쥔(54)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지난 2월 미국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시도한 이유는 자신의 아내 구카이라이(55)를 흠모한 것이 발각돼 자신에게 보복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그의 이날 발언록을 보면, 보시라이는 "왕리쥔이 도피한 진짜 이유는 구카이라이를 몰래 사모하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구카이라이에게 편지와 말로 고백을 했고 이것이 나에게 발각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보시라이는 "왕리쥔은 내 가정을 침범했고, 내 근본적인 감정을 침해했다"고 말했다. 그의 입에선 "아내와 왕리쥔은 如膠似漆의 관계(아교와 옻나무처럼 남녀 사이가 깊어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등 충격적인 진술이 잇따라 나왔다.
자신의 아내의 살인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것이 왕리쥔의 망명 기도로 이어졌다는 혐의를 반박하려는 증언이다. 보시라이에게 발탁돼 수십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범죄와의 전쟁'영웅으로 유명했던 왕리쥔은 24일과 25일 보시라이의 직권 남용 혐의를 증언하는 증인으로 나와 이제 악연이 된 보시라이와 대질 신문을 벌이기도 했다.
보시라이는 25일엔 부패 혐의를 벗으려고 자신의 외도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외도 때문에 지난 2000년 구카이라이가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 보과과를 데리고 영국으로 가버렸다면서, "나는 그때 정부가 있었고 구카이라이는 이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 홧김에 과과를 데리고 떠나버렸다"고 진술했다.
보시라이가 정치적으로 몰락한 뒤, 그의 여성 편력을 둘러싼 소문이 무성했지만, 그가 공개 장소에서 외도사실을 스스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이런 고백은 랴오닝성 성장이던 2002년 비자금 500만위안(약 9억1000만원)을 조성해 구카이라이에게 줬다는 공금 횡령 혐의를 벗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중국에서는 보시라이의 스폰서였던 쉬밍 다롄스더그룹 이사장이 보에게 여러 여성을 '상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중국을 뒤흔든 보시라이 사건의 핵심인물이자 보시라이의 부인, 유능한 변호사로 명성이 자자했던 구카이라이가 '악녀인가, 정치적 희생자'라는 관심도 다시 고조됐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성의 딸로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재원으로 유명했던 구카이라이는 보시라이의 두번째 부인이다. 보시라이는 중국 혁명 8대원로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보이보 전 부총리의 아들이지만 문화대혁명 시기 부모가 숙청당하는 과정에서 고초를 겪었으며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 첫 부인과 결혼했다. 하지만 문혁이 끝난 뒤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랴오닝성의 관리로서 출세 가도를 달렸고,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혼소송 끝에 첫 부인과 헤어지고 베이징대 법대를 졸업한 젊은 변호사 구카이라이와 재혼했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정치적 야망과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로 밖으로 떠돌면서, 구카이라이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카이라이는 우울증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1년 11월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독살한 혐의가 유죄로 판결돼 지난해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오랫 동안 사업상 알고 지내던 헤이우드가 아들을 위협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구카이라이가 헤이우드와 비밀스런 관계였다는 의혹도 일었다.
보시라이 역시 자신의 일과 야망 때문에 아내가 외로운 생활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26일 "구카이라이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해외에 나가 살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충칭 당서기로서 매우 바쁘게 일하면서 빈곤지역을 돌아다니느라 구카이라이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과정에서 보시라이 일가의 사치, 중국 특권층의 호화로운 생활의 단면도 드러났다.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가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다롄스더그룹의 쉬밍 회장이 전용기를 제공한 것이 드러났다. 보과과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다니며 교수와 동창생 등 40명을 초대했을 때, 쉬밍 회장은 항공료와 5성급 호텔 숙박비 등을 모두 지원했다. 보시라이 일가는 프랑스 니스에 호화 별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업가들로부터 거액의 뇌물과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시라이는 혐의를 벗기 위해 사생활을 공개했고, 중국 지도부는 '좌파의 영웅'이자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많은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보시라이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 이를 적극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체제 출범을 앞두고 치열하게 벌어진 권력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인 보시라이는 중국 좌파들의 '영웅'이다. 그가 2007년부터 충칭 당서기로 재직하면서 추진한, 농민들에 대한 차별을 줄일 도-농 통합발전모델, 토지 개발 수익의 사회 환수, 저소득층 복지 확대 정책 등을 포함하는 '충칭모델'을 추진했다. 이런 정책은 중국 전역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보시라이는 중국 최고지도부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난해 3월 충칭 당서기직을 박탈 당하고, 부패와 직권 남용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아왔다.
보시라이는 26일 법정에서의 최후 진술을 통해 "만감이 교차한다. 내게는 이제 여생밖에 남지 않았다"며 인생무상, 권력무상의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나에게 가족과 부하를 잘 관리하지 못한 큰 잘못이 있다"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은 무죄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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