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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아! 열쇠

[2015-10-22, 13:51:15] 상하이저널

 

큰 아이가 유난히도 기상이 늦은 아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밥은커녕 이러다간 스쿨버스까지 놓칠 것 같아 미리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빨리 나오라 재촉했다. 등하교, 출퇴근하는 시간이기에 미안스럽지만 2~3분 남짓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는 사이 큰아이가 나왔는데 이 녀석 나오면서 문을 쾅 닫는다. 평상시에는 나가며 나더러 문을 닫으라 하던 녀석이 내가 문 밖에 있어서였나? 나를 보며 문을 닫아 버렸다. 아침 준비하던 옷차림에 손에 열쇠, 휴대폰 하나 없이 오전 7시 40분에 그렇게 황당한 아침을 맞이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출장을 갔고 큰아이는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나왔던지라 스쿨버스를 놓칠까 타박 한 번 못하고 덩그라니 나만 남겨졌다.

 

아! 열쇠!
보통 여벌 열쇠를 동기간처럼 가깝게 지내는 지인 집에 맡겨 놓았다. 아뿔사, 며칠 전 아이 또래가 맞는 두 가정이 모처럼 저녁 식사를 하고 날이 좋아 바깥 공터에서 어른들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아이들은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며 화장실이 급하면 가까운 우리 집으로 들락날락하며 놀았다. 그 와중에 막내가 물 한 병 가지러 간다 하더니 한참 후에 나타나서 집에 열쇠를 두고 왔단다. 울상이 된 막내를 달래 지인 집에 맡겨 둔 여벌 열쇠를 가져다 열어 놓고선 며칠이 되지 않아 다시 맡기지도 않았는데 이른 아침에 맨 몸으로 문이 닫혔다. 그 황당함이란….


중국 생활 18년 차에 열쇠를 안에 넣어 두고 닫아 버린 황망한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마는 정말 그날 아침은 요즘 아이들 표현으로 멘붕(멘탈 붕괴)이었다. 부랴부랴 위층 지인 분께 닫힌 문을 열어 줄 아저씨에게 연락해 달라 부탁했다.

 

15분 후에 나타난 아저씨가 얼마나 반갑던지. 금새 열릴 것 같은 문인데 30분이 넘게 열지 못하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중국 생활에 열쇠를 잊고 문을 닫아 건 적이 여러 번이라 어떻게 문을 여는지 할 줄은 몰라도 아저씨가 어떤 순서로 문을 열어줄 지 순서는 알고 있는데 이 방법을 해도 안되고 저 방법을 해도 안 된다. 슬그머니 큰 아이 돌아오면 혼구멍을 내 주리라 씩씩거렸다. 다행히도 45분 남짓 되어서 문이 열리고 집에 들어왔다.

 

이럴 때면 인터넷의 교민 사이트에 자주 오르내리는 번호로 여는 디지털 도어락 광고가 실감이 나며 바로 바꾸고픈 충동을 느낀다. 몇 번 바꾸려 할 때마다 디지털 도어락은 전기충격에 취약하다는 남편의 반대에 부딪쳤다. 큰아이에 대한 화도 문이 열리자마자 함께 사라졌다. 문제는 3일 후, 외출을 준비하며 잊고 온 물건이 있어 잠깐 들어 와 물건을 갖고 나간다는 것이 열쇠를 놓고 문을 닫아 버렸다. 1년 가까이 이런 일이 없다가 3일 간격으로 두 번이나 열쇠를 두고 온데다 방금 벌어진 상황은 오롯이 나의 실수라 더 당황스러웠다. 다시 아저씨를 부르니 아저씨도 웃는다.

 

한국과 달리 문을 닫으면 잠겨 버리는 중국의 현관문에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쉽지 않다. 이제는 열쇠를 놓고 문을 닫아 당황스럽지 않도록 현관 잠금 장치를 바꾸기로 했다. 이젠 더 이상 현관문을 나서며 가방을 몇 번씩 뒤져 열쇠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내심 열쇠 챙겨 다니는 것이 불편하고 다른 집 현관 잠금 장치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전기 충격기에도 안전하다는 잠금 장치로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이렇게 우리 집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또 하나 바뀌었다. 메일로, 카톡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지만 아직도 편지를 쓰곤 한다. 새로운 잠금 장치의 편리함과 편안함 속에서 열쇠가 추억이 될 일만 남은 듯 하다. 그 추억을 예쁜 낙엽을 줍듯 내 삶의 기록으로 하나 남겨 본다.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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