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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5월에 하는 반성

[2024-05-20, 15:18:21] 상하이저널
나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중국에서 수산물 사업을 하셨다. 가난한 섬마을에서 태어나, 새벽마다 가족을 도와 바다로 나갔던 아이. 학연도 지연도 없이 성공에 야망을 품게 된 아버지가 맨몸으로 실력과 열정만으로 도전할 수 있었던 일이 당시 수산업이었던 듯하다. 60대이신 지금도 꿈 많은 청년 같은 나의 아버지는 35년 전 큰 뜻은 품고 홀로 머나먼 땅 중국에 도착하셨다.

사업하는 집안이 으레 그렇듯 우리 집 경제 사정은 불안정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빠를 도와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는데, 아마도 친구의 소개로 보험회사에 들어갔을 때 인 듯하다. 어느 날 엄마가 두툼한 무게의 전단지 한 묶음과 엄마의 이름, 연락처가 파인 도장을 내게 건네며, 전단지 구석의 칸 안에 예쁘게 찍으라 명하고 집안일을 하러 가셨다. 10살쯤이었던 나는 엄마 이름을 최대한 멋있어 보이게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도장을 찍었는데, 결과적으로 일부러 삐뚤빼뚤 비스듬히 찍거나, 가장자리의 선과 겹치게 해서 찍어 댔다. 필기체처럼 흘려 쓴 듯 멋있어 보이게. 그리고 그날 엄마에게 아주 많이 혼났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나와 동생을 낳았던 아빠 엄마. 순박하고 예쁜 커플이었을 그들에게 부성애와 모성애라는 감정이 주어지며 부모라는 극한 직업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책임져야 하는 생명이 있는 그 기분이란. 지금의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무게를 짊어지고, 가 본 적 없는 곳까지 멀리멀리 날아가 더 큰 물고기를 잡아오고 싶었던 아빠와 혼자 둥지를 지키며 고단했을 엄마.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싶었을 두 분의 삶에 내 존재가 끼친 영향력이 새삼 죄송스럽고 고맙게 느껴진다. 

최근 유행하는 수저계급론에 따라, 넌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고 물으신다면, 글쎄. 분명 금수저는 아니다. 어릴 적부터 부유하게 자라 부족한 것 없이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고, 부모님의 돈으로 취직도 집도 걱정 없는 삶을 살았던 적은 없다. 대한민국 성공 조건 1순위가 부모님의 재력으로 뽑히는 시대. 그들이 말하는 성공의 정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풍요롭지만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덕분에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하고, 소확행을 추구하는 캐릭터로 성장한 지금의 내 모습이 난 꽤 좋아 보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빠의 권유로 중국에 온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중국에 남아있을지 상상도 못 하셨을 두 분. 사각형 가운데 반듯이 도장 찍기를 거부하듯 자유로운 나의 성향과 중국에서의 생활은 궁합이 꽤 잘 맞은 듯하다. 그리하여 올해 어버이날에도 카네이션은 택배로 배달되고 간단한 통화로 입을 쓱 닦은 나. 시집가라는 잔소리에 또 서둘러 전화를 끊었지만, 이는 언젠가 당신들이 떠나고 혼자 남을 나의 외로움을 미리 걱정하는 말씀임을 잘 알고 있다.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듯, 혼자 나아가는 내 삶도 때론 마음 같지 않다. 길을 잃은 듯 막막하거나, 기대와 실망이 반복될 때, 그리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등. 가장 위로가 필요한 그때, 내 안의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찾는다. 나도 내 몫의 경험을 모두 겪고 나면 엄마아빠처럼 누군가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아직 한참 멀어 보이는 그날까지, 오늘도 두 분의 응원 속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과 생각으로 삶을 채워가야지. 그리고 껴안을 수 있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더 자주 찾아뵈어야지. 이 글을 쓰며 부산행 티켓을 끊었다.

상상(sangsang.story@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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