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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32] 그 산, 그 사람, 그 개

[2024-03-09, 07:16:56] 상하이저널
펑젠밍(彭建明) | 펄북스 | 2016년 8월
펑젠밍(彭建明) | 펄북스 | 2016년 8월
-원제: 那山那人那狗(1983)
"아련하고 기묘하며 때때로 쓸쓸함을 곱씹어야 하는 청록빛 이야기"  

중국 후난성의 어느 산골 마을에, 20년 넘게 우편 배달부를 하는 아버지와 그 일을 이어받은 아들, 그리고 함께 길동무를 해주는 개 한 마리가 있다. 

시간적인 배경은 아마도 1980년대 초반이 아닐까 한다. 생산대(生产队:1958년부터 1985년까지 농민공사 시기에 실행된 중국 사회주의 농업경제의 기초 조직), 분배 등등의 대화 내용으로 보아 이제 막 문혁 시기가 지나고 도시에서는 개혁개방이 한창일 무렵일 듯하다. 하지만 이 산골 마을은 여전히 느리고 평온하고 조용하다.  

사명감 하나로 20년이 넘게 힘든 우편 배달부 생활을 해 온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몸에 무리가 와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은퇴를 결심하고 그 일을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아들이 대신한다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그저 집집이 편지를 전해주는 일이라고?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라 험난한 산이나 고개도 잘 걸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함께 길을 나선다. 장엄한 첫발을 내딛는 젊은 새내기와 과거와 이별하려 마지막 여정에 오른 늙은이가 함께 길에 올랐다.       

그리고 개가 그들과 함께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오지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우편물을 전달하는 세세한 방법도 알려 준다. 차가운 개울을 건널 때는 아들의 널찍한 등과 튼튼한 두 다리를 보며 안심도 한다. 젊은 새 주인이 낯선 개는 여전히 늙은 아비만을 보고 따르지만 그의 당부하에 순조롭게 길에 오른다.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는 환경에서 자란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의 인생과 맡은 일에 만족하며 생활한다. 우편 배달원의 가정에서 자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무거운 책임감을 이어받는 과정 또한 자연스럽고 순조롭다. 아버지는 열심히 길을 알려주고 필요한 사항을 세심하게 전달한다. 이 두 부자 사이에서는 세대의 충돌이나 갈등 같은 것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세대교체는 평온하고 순조롭게 산과 사람과 개가 모두 자연스럽게 서로 의지하며 하나가 되어 큰 마찰도 충돌도 없이 조화롭게 이어진다. 

사실 이 소설은 마지막 장면을 읽는 순간 너무나 아쉬웠다.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펼쳐진 초록의 공간인 산과 들에 대한 아쉬움에 벌써…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아쉬움에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 영화를 본 이후 소설의 내용까지 더욱 청초하고 아련하게 가슴속에 각인될 수 있도록 하게 해 주었다. 

이 소설은 1983년 중국 우수 단편 소설상을 수상하였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몬트리올 및 인도 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았으며, 일본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원작의 분량은 단편소설에 해당되는 양이라 번역본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묶어서 번역되었다. <그 산, 그 사람, 그 개> 외에도, 언제 어디서든 쪽잠을 자는 놀랍고도 기묘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잠>, 뱀과 뒤얽힌 한 집안과 마을의 기묘한 사연을 그린 <뱀과 이웃으로 살기>, 우연히 낙타를 만나고 그 낙타를 사랑하게 되어 함께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담은 <그 도시, 그 사람, 그 낙타> 등이 잔잔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이야기로 함께 실려 있다.  
  

- 소설에서 영화로 : 霍建起《那山那人那狗 Postmen in the Mountains,1999》 소설에 의거해서 각색한 영화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원작의 풍부함과 다채로움에 비견될 수는 없다고들 한다. 영화는 영상 예술이고, 소설은 이야기 예술이라서 일 거다. 중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원작 소설과 그 소설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물론 붉은 수수밭(원작 : 莫言《红高粱》), 인생(원작 : 余华 《活着》), 패왕별희(원작 : 李碧华 《霸王别姬》)등 많은 영화들이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의 분량과 영화라는 매체를 만나 벌어지는 거리감에 두 가지를 함께 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빠질 때가 많다.

원작 소설의 분량도 그리 길지 않고, 영화화되면서 인물에 대한 묘사와 행동 및 대사, 그리고 정경들 모두 거의 완벽하게 재현된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사실 행운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따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걷고 있는 산등성이와 개울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앞서 걸어가는 아들, 그리고 뒤따라 걷는 늙은 아비와 개 한 마리. 자연스레 상상하던 소설 속의 모습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내 상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펼쳐진 녹색의 푸르름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 후어지엔치는 1982년 베이징 영화대학에서 장예모, 천카이거 등의 5세대 감독들과 함께 수학한 동기이다. 하지만 그는 미술학과를 졸업했고, 그 후 10여년간 베이징 영화 제작소에서 미술 설계를 담당하다가 뒤늦게 메가폰을 잡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경력 때문인지 영화는 시종 중국 어느 산골의 자연환경을 아름답게 그려내어 관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느끼게 해준다. 원경을 자주 사용하여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듯 담아낸 녹음 가득한 후난성의 산수와 마을 풍경은 자연에 어우러져 그 속에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을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게 만든다.  

<이 소설의 매력> 

1.원서에 도전할 수 있다. 짧은 분량과 짧은 호흡의 문장 구성은 나도 원서 한 편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2. 이 소설은 단편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3. 단편집의 매력처럼 대부분의 작품들이 마지막 결말에 아쉬운 여운을 남기거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혼자 그 결말을 상상하는 또다른 행복을 준다. 

4. 이 소설을 꼼꼼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재현해낸 영상이 있다. 소설을 읽은 후 영화를 본다면 그 잔상이 오랫동안 머리속에 머물러 있을 듯하다.  

장윤경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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