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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쌤 교육칼럼] 가지 않은 길

[2023-08-02, 18:28:27] 상하이저널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피천득 역

삶은 유한하고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인가? 이 시는 언제 봐도 읽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흐르는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듯이, 던져진 돌멩이가 물속으로 가라앉듯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비애랄까. 150년 전에 태어난 프로스트의 이 시가 여전히 애송되는 것을 보면 아마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다. 누구나 씁쓸한 아쉬움이나 회한 한 조각 쯤은 가슴에 묻고 살 것이므로.

양자 물리학의 다세계 해석에서는 갈라진 평행우주가 무한히 존재한다. 그 가설에 의하면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을 동시에 다 가볼 수 있다. 안정성을 고려해서 공무원이 되는 나와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가수가 되는 내가 우주 어디엔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매 순간 나의 작은 선택이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 내고 그 무수한 평행우주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상상은 문학과 예술, 대중문화 콘텐츠에 영감을 주었다. 그중 하나가 2021년에 나온 매트 헤이그의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2021)>다.

[사진=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The Midnight Library)']

수영에 소질이 있었던 노라 시드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수영을 그만뒀고, 오빠와 만든 록 밴드를 탈퇴했으며, 결혼식 이틀 전에 파혼을 선언했다. 쇠락해가는 고향 마을의 악기점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밤, 그녀의 고양이마저 도로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모든 것이 후회의 연속이고 더 이상 살고 싶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노라는 죽기를 결심한다. 

그런데 그녀가 도달한 곳은 거대한 도서관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서가에는 빽빽하게 책들이 꽂혀 있고 그 책에는 노라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씌어있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된 삶도 있고, 세계적인 록스타가 된 삶도 있다. 결혼해서 고향에서 펍을 운영하기도 하고, 빙하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게 선택하지 못한 길을 가보면서 후회를 없애고 아버지를 용서한 그녀는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긴 그녀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모든 게 달라진다.
 
[사진=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이쯤에서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 스텔라(2014)>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근자에는 올해 양자경이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있다.

주인공 에블린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자친구를 따라 미국에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며 숨가쁘게 살고 있다. 치매 걸린 연로한 아버지,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레즈비언 딸, 이혼장을 내민 남편, 게다가 세금신고에 문제가 있다고 닦달하는 국세청 직원까지 현실의 삶은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멀티버스(다중우주)에서는 자신이 꿈꾸었던 배우가 되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하고 무술에 통달한 전사가 되어 악당들과 싸우기도 한다. 에블린처럼 다중우주를 오가며 에블린을 죽이려고 하는 극 중 최대 빌런은 공교롭게도 딸 조이가 흑화된 모습이다. 조이를 그렇게 만든 것은 다른 우주에서 너무나 가혹하게 조이를 조련하려던 에블린이 자초한 것이지만, 결국 에블린의 필사적인 노력과 사랑으로 우주는, 그리고 현실은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사진=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

노라의 ‘후회의 책’과 조이의 ‘검은 베이글’은 닮아있다. 하지만 노라는 적극적으로 후회를 없애나가며 성장하지만, 자신의 욕망과 주변의 기대 사이에서 좌절되고 억압된 조이는 괴물로 변한다. 노라가 수 만의 관중 앞에서 노래하고, 고립된 설원에서 곰과 맞닥뜨리고,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오빠와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녀 자신의 경계는 무너지고 확장된다. 반면, 조이가 ‘어린 시절의 실패와 후회로 지어낸’ 검은 베이글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무화(無化)시키는 허무와 공허의 세계다. 조이는 가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지만, 엄마는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 지치고 무력해진 조이는 현실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자 베이글의 텅 빈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은 물론 세계 자체를 붕괴시키려고 한다.

재외국민 특례 입시 원서 접수와 더불어 지필 시험과 면접도 거의 마무리 되었다. 이미 자신이 계획한 진로에 맞춰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학생들도 있겠지만, 막바지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접수한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자신이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학생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진작 열심히 준비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학생들에게는 처음으로 인생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입시 결과와 상관없이 이러한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다.

다중우주는 가능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스스로 한계 짓고 가두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평생 직장도 사라지고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바야흐로 부캐가 돈이 되는 시대가 아닌가? 다중우주 속 다양한 내 모습은 다 내가 가진 모습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를 품고 있는 자신을 믿어보자.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무수한 갈림길과 무수한 선택 앞에 놓이게 될 것임을 기억하자.

김건영
-맞춤형 성장교육 <생각과 미래> 대표
-위챗 kgyshbs   
-thinkingnfuture@gmail.com

 
 


20년째 아이들과 책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쓴다.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 코칭과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청소년 인문캠프, 어머니 대상 글쓰기 특강 등 지역 사회 활동을 해왔으며, 도서 나눔을 위한 위챗 사랑방 <책벼룩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상하이저널과 공동으로 청소년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프로젝트 <청미탐>을 진행하고 있다. 위챗 kgyshbs / 이메일 thinkingnfuture@gmail.com / 블로그 blog.naver.com/txf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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