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책읽는 상하이 201] 핏빛 자오선

[2023-07-22, 06:42:17] 상하이저널
코맥 매카시 | 민음사 | 2021년 6월
코맥 매카시 | 민음사 | 2021년 6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메마른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핏빛 자오선은 잔인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무너진다. 처음 접하는 사막의 마른 먼지가 풀풀 나는 듯하고, 지글지글 태양이 끓어오르다 못해 말라 타버릴 것 같은 메마른 상황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문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책을 읽는데 나도 목이 말라진다. 내용은 무섭고 흉흉하고 인간이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지옥인데, 문체가 너무 흥미롭다. 선혈이 낭자하고 사람은 동물과 같은, 아니 동물보다 못한 상태로 목숨을 잃어가는 처절한 현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한다.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코맥 맥카시의 책이다. <로드>라는 제목의 책으로 더 유명한 작가의 이 책은 서부의 장르 소설임이 읽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건조하고 묵시록적인 느낌을 독자가 날 것 그대로 느끼게 한다. “구걸의 나날이고 도둑질의 나날이다. 자기 자신을 제하고는 개미 한 마리 없는 길을 나아가는 노새 위의 나날이다.” 얼마나 아무것도 없으면 개미 한 마리 없는 길일까. 

처음 읽었을 때는 사람의 목숨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책의 내용에 충격을 금치 못해 재미있게 읽다가도 멈추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다른 의미의 건조한 세상이 되어버린 요즘 읽으니, 그 참담한 상황이 잘 느껴진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조차 없는 소년이다. 언제 태어났는지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피에 물들고 폭력이 난무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상황을 그림처럼 생생한 문체로 그려낸다. “아침에 오줌 빛 태양이 어스름한 먼지 유리판 너머로 형체 없이 떠올랐다.” 이 얼마나 생생한 문체인가.

“네 녀석이 태어난 밤에, 1833년도였지, 사자자리인지 뭔지가 얼마나 대단하게 쏟아지던지. 하늘에 시커먼 구멍이라도 뚫린 줄 알았다. 북두칠성 국자가 뒤엎어지면 그럴까.”

별이 쏟아지던 날 태어난 이름도 부여되지 않은 이 소년이 어떠할지 궁금하여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너무 잔인하여서 읽기 유쾌한 책은 아니다. 강자의 폭력과 사람의 존폐 위기 속에 드러나는 악들,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이 승리인 그 상황이 마구 느껴지는 책이다. 법이란 무엇인지. 도덕이란, 종교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1846년 미국과 멕시코 전쟁이 끝난 뒤 벌어졌던 실제 사건들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이 되는 책이다. <신곡>과 <일리아드>와 <백경>을 합쳐 놓은 듯 비범하고 숨막히는 걸작이다.

나은수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위챗페이, 외국인 해외카드 결제 수수..
  2. 14호 태풍 ‘풀라산’ 19일 밤 저..
  3. 제1회 ‘상하이 국제 빛과 그림자 축..
  4. 사진찍기 좋은 상하이 이색거리 5곳
  5. 中 선전서 피습당한 일본 초등생 결국..
  6. 中 자동차 ‘이구환신’ 정책, 업계..
  7. [교육칼럼] 한 뙈기의 땅
  8. 상하이, 호우 경보 ‘오렌지색’으로..
  9. [신선영의 ‘상하이 주재원’] 상하이..
  10. 메이퇀 배달기사 월 평균 200만원..

경제

  1. 위챗페이, 외국인 해외카드 결제 수수..
  2. 中 자동차 ‘이구환신’ 정책, 업계..
  3. 메이퇀 배달기사 월 평균 200만원..
  4. 샤오미도 3단 폴더블폰 출시하나… 특..
  5. 화웨이, ‘380만원’ 트리폴드폰 출..
  6. 벤츠, 비야디와의 합자한 전기차 ‘텅..
  7. 中 ‘금구은십’은 옛말… 중추절 신규..
  8. 中 지준율 0.5%p 인하…금융시장에..
  9. 中 재학생 제외 청년 실업률 18.8..
  10. 중국, 7년 만에 초전도 자성체 세계..

사회

  1. 14호 태풍 ‘풀라산’ 19일 밤 저..
  2. 中 선전서 피습당한 일본 초등생 결국..
  3. 상하이, 호우 경보 ‘오렌지색’으로..
  4. ‘등산’에 목마른 상하이 시민들, ‘..
  5. 상하이 지하철 9개 역이름 바꾼다
  6. 레바논 ‘삐삐’ 폭발에 외국인들 ‘중..

문화

  1. 제35회 상하이여행절, 개막식 퍼레이..
  2. 제1회 ‘상하이 국제 빛과 그림자 축..
  3. [책읽는 상하이 253] 너무나 많은..
  4. "공연예술의 향연" 상하이국제예술제(..

오피니언

  1. [허스토리 in 상하이] ‘열중쉬어’..
  2. [교육칼럼] 한 뙈기의 땅
  3. [교육칼럼] ‘OLD TOEFL’과..
  4. [무역협회] 중국자동차기업의 영국진출..
  5. [신선영의 ‘상하이 주재원’] 상하이..
  6. [허스토리 in 상하이] 애들이 나에..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