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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두 번째 글쓰기 '상처받을 수 있는 능력'

[2019-12-21, 07:59:02]

  

 

올 봄에 이어 두 번째 엄마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특강을 진행했다. 지난번 주제가 자신의 서사를 새롭게 써보는 것이었다면, 이번 주제는 자신의 감정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수강생들이 자신의 기억을 소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힘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로 기억이 잘 안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읽으며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쉰둥이 귀한 외아들 ‘울 아버지’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그림을 그리면 곧잘 상을 받았다. 그래서 대회를 나가게 되어 연습을 했지만, 크레파스가 안 좋고 색상이 모자라서 속상했다. 어느 날 아침 학교 가기 전 좋은 크레파스 사달라고 아버지에게 엄청 크게 소리치고 울며 떼를 썼다. 아버지는 회초리 들고 쫓아오시다 안되니 자전거까지 타고 오시지만, 나는 자전거가 다닐 수 없는 개울창으로 달아난다. 그럼 체념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신다. 나는 아버지가 안 보는 데서는 절대 떼를 쓰지 않는다. 나는 다시 살금살금 쫓아가 아버지가 볼 수 있는 곳에 가서 다시 소리소리 지르고 떼쓰다 학교에 간다. 오후 미술시간 되기 전에 아버지가 좋은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학교에 오셨다.

울 아버지는 쉰둥이 귀한 외아들이셨다. 그래서 세상에서 자기가 젤 잘났고 최고라고 생각하신다. 어쩌다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우리 오남매는 조금씩 배식을 받고, 나머지는 아버지가 맘껏 잡수신다. 그렇게 무섭고 고집불통 아버지도 자식은 사랑하시는 것 같다.

– P씨(60대 중반)

 

아빠의 평생 숙원사업 ‘복권’

우리 아빠는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한 강원도 촌놈이다. 많이 배우지도, 많이 갖지도 못한 탓 이었을까. 항상 허풍과 허황된 꿈이 가득한, 대박을 꿈꾸는 인생을 사셨다. 궁핍한 시골 살림에도 1년 농사를 지으면 그 돈을 들고 사업을 하겠다고 돌아다니셨다. 그런 남편 때문에 엄마는 항상 힘들었고, 우린 가난했다. 한때는 난에 꽂혀서 동호회분들과 전국 산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산행에서 캐온 난들은 꽃을 피우지 않았고 우리의 눈엔 잡초에 불과했다. 아빠의 또 다른 취미이자 평생 숙원 사업은 바로 복권이다. 주택복권 시절을 지나 로또로 바뀐 지금까지 아빠는 매주 복권을 사신다.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시 공부하듯 노트에 번호 조합을 적곤한다. 몇 권은 족히 되는 아빠의 복권노트…(중략)
그 후로도 변한 것은 없다. 아빠는 여전히 로또를 사들이시고, 사위에겐 "내가 옛날에는~"이란 말을 달고 사신다.   
-B씨(40대 중반)   

            

수업마다 몇 사람씩 눈물 바람을 하기 마련이다.  모두 눈시울을 적시며 공감해주고 그러는 사이 움츠러들었던 자아는 생기를 되찾는다.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낸 글이 주는 감동은 매끄러운 미문(美文)에 비할 바가 아니다. 6주간의 글쓰기 강좌를 마치고 마지막 수업 시간엔 ‘Before & After’를 글쓰기 과제로 내주고 나누었다.

 

 

용서가 가장 어려웠어요

기억 중에 가장 아프고 밝히기 어려운 부분들을 써봤어요. 그때 감정을 내밀하게 떠올리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장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받은 외면은 나이가 많든 적든 처리하기가 어려운 것들이었어요. 용서가 가장 어려웠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내가 나를 용서하기도 어려웠어요. (중략)

각기 다른 성장통을 겪은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보듬고, 기쁨과 슬픔을 오감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나눔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어떤 면으로는 성숙했고, 어떤 면으로는 치유가 되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는 타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새로운 인연들은 더 쉬이 받아들일 수 있는 품을 만들어준 것 같았어요. 또한 가족들을 조금 더 유연하게 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C씨(40대 초반)

 

내가 외면했던 나와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

머릿속에 맴돌던, 떠돌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감정과 느낌과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직은 많이 힘들지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며 저렇게 표현하면 되는구나 배운 점이 좋았다. 또 나의 지나온 삶을 시기별로 깊이 훑어보고 나를 중심으로 한 생각도 깊이 했지만, 그 시기의 젊은 부모님의 관점에서도 바라보고 이해를 하게 된 점 그리고 그 관점에서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대했듯 나도 나의 자식에게 어찌 해야 할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 본 점이 좋았다.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롭고 나만 특별한 어려움을 겪은 듯 자기연민에 갇혀있었지만 각자 나름의 힘듦과 극복하는 과정을 나누면서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와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객관화가 된 점이 좋았다. 그리하여 글쓰기 이전의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 쓰는 것에 많은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의 모자람을 더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씀”으로써 내가 외면했던 나와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Y씨(50대 중반)

 

 

부정적 반응이 반복되면 고통을 피하고자 상처에 마취제를 뿌리게 되고 무뎌지고 무감각해진다. 글을 쓰는 일은 기억을 되살리고 상처에 직면함으로써 객관화시키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과정이다. 어쩌면 글쓰기는 예민함을 기르는 일이고 상처받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능력은 삶을 충만하게 해준다.

 

"감정은 편리하게 칸막이가 나뉘어 있는 게 아니다. 감수성은 말처럼 쉽게 선택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흔히 부정적이라고 일컫는 감정을 둔하게 만들어 놓으면, 사소한 기쁨이나 틈틈이 행복을 느끼는 능력, 연민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함께 사라지기 마련이다."

-부희령의 <무정 에세이> 중 ‘상처받는 능력’


 

김건영(thinkingnfutu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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