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작은 글씨를 보려면 나도 모르게 손이 앞으로 죽 뻗어지고, 컴퓨터의 글자들이 번져 보이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글자들이 왜 이리 아른거리지 하면서도 안경을 써야겠다 는 생각은 하지 못하다가, 아이들 안경 맞추는 김에 내 눈에 나타난 현상을 이야기 하니, 안경사가 너무도 간단하게 “노안(老眼)이 시작 되셨나 보네요! 라는 말을 한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눈이 좋아서 이제껏 한번 도 안경을 써본 적도 없고, 내 나이보다는 나이가 덜 들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어온 나로서는 노안이라는 말이 정말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마음에 거슬리는 ‘늙을 노(老)’자 때문에 꽤 속이 상한다. ‘눈이 좋으면 노안이 빨리 온다던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봐도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고, 내가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 했다.
이년 전 이십대 초반의 외사촌 동생이 혼자서 상하이 여행을 왔다가 집에 들러 중국어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여행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저우좡(周庄)에서 만난 중국의 중년 부부의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며 그 때 찍은 사진을 보여 주는데, 동생이 이야기 하는 사진 속의 부부는 내 또래의 40대 부부의 모습이었다. 그 때 까지도 내가 생각하는 ‘중년’이란 나의 모습이 아닌 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이었는데, 나도 어느덧 中年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며 혼자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이젠 새치라 부르기엔 조금 민망한 흰머리도 생기고, 운동을 조금만 게을리하면 ‘나잇살’이라는 불청객이 살금살금 찾아 들고, 조금만 움직이고 나면 허리며 무릎이 쑤시고, 가끔은 식구들 앞에서 민망할 정도로 건망증 증세를 보이면서도 아직은 나를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인가 보다. 이젠 나보다 훨씬 커 버린 아이들이 나의 현재를 알려 주니 이젠 나도 ‘나이 값’을 하며 살아야 하나 보다.
하긴 아직 정정 하신 부모님들 앞에서 ‘나이’를 운운 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고, 워낙 고령화 사회가 되어 사실 내 나이 정도는 ‘젊은 사람’ 소리를 듣게 되는 요즘이고 보면, 40대 초반에 벌써 ‘老眼’ 운운 하며 징징거리는 내 모습이 어르신들 눈에는 철없는 짓으로 보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부터 내 모습이 나이가 들어 보이는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나의 마음가짐과 노력에 달린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찮아서 하기 싫은 일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보고, 움직이기 싫어서 잠시 쉬었던 운동도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또다시 다가오는 새해를 향해 내년에는 올 해 보다 더 젊은 마음으로 더 젊은 모습으로 살아지기를 바란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서 일까? 노안이라고 못을 박았던 안경사가 고개를 갸웃 하더니 어쩌면 ‘난시성 원시’ 일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진단을 내리며 안경을 맞춰준다. 맞춰준 안경을 쓰고 책을 보니 글자가 선명해 보이고, 눈도 피곤하지 않으니, 내 눈에 잘 맞긴 하는 모양이다. 그래! 아직은 ‘노안’은 아니지 애써 내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푸둥연두엄마(sjkwon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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