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사랑법 19] 사랑은 맞춤한 때에 온다 ‘교통대학교 민항캠퍼스’

[2024-11-25, 17:07:27] 상하이저널

늦은 오후 남편과 함께 산책 삼아 걷다 들른 곳은 교통대학교 민항캠퍼스. 대학 캠퍼스는 특별한 공간이다. 모교가 아니라 해도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20대 초반의 나로 돌아가며 시간 이동을 한다. 그 시절, 설렜던 일이나 밤새 고민했던 일들이 무작위로 떠오르고, 구체적인 사건보다 그때의 감정들이 나를 에워싼다. 한없이 풋풋하고 어딘가 미숙했던 젊은 날의 감각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남편을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풋풋한 시절의 설렘 속에서 우리는 더 뜨겁게 사랑했을까, 아니면 서로의 미숙함에 상처받았을까. 같은 사회과학대에서 공부했으니, 캠퍼스에서 오가며 스쳤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내가 늘 걷던 계단과 복도를 그도 걸었을 것이고, 도서관의 이쪽저쪽에 따로 앉아 함께 공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 식당이나 대형 강의실에서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아주 가까이 앉았던 적도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레이더에 들어오지 못했다. 각자 인생의 다른 궤도를 따라 걸으며, 서로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만났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사랑을 이룰 수 없었을 지 모른다. 


사랑에서 타이밍은 중요하다. 로미오가 줄리엣이 깨어나기 전에 도착해 그녀의 가짜 죽음을 진짜로 믿고 자살한 후, 줄리엣이 깨어나며 비극은 완성된다. 로미오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거나, 줄리엣이 조금만 일찍 눈을 떴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타이밍은 단순한 시간적 우연 이상의 무엇이다. 타이밍은 우리 삶 속에서 준비되고 완성되어 가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열 여섯 살의 나와 스무 살의 나, 서른 살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모두 다른 존재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의 전 존재가 조금씩 깎이고 다듬어지며 성숙해 간다. 스무 살의 나와 스물 한 살의 그가 마주쳤다 해도, 퍼즐이 서로 맞물리기 위한 이음새가 매끈하게 들어맞지 않았을 것이다. 스무 살의 나는 서른 살의 나와는 여러 방면에서 매우 달랐으니까. 그건 그도 마찬가지다.

“인화지 위로 흐릿한 상이 서서히 떠오르듯 나도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유림 <아날로그를 그리다> 중)


서로의 눈에 상대가 선명하게 떠올랐을 때, 사랑은 불꽃이 일 듯 피어난다. 우리가 만난 타이밍은 우연일 수 있지만, 그 우연은 필연처럼 느껴진다. 퍼즐의 이음새가 매끈하게 딱 맞을 가장 적절한 시점을 기다렸다는 듯이, 사랑은 맞춤한 순간에 찾아온다. 만약 조금 더 일찍 만났거나, 조금 더 늦게 만났다면, 그 사랑이 지금처럼 깊어졌을 지는 알 수 없다. 

사랑은 그저 맞춤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일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견디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우리는 함께 깎이고 다듬어져 간다. 함께하는 삶의 상이 서서히 떠오르듯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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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위챗: @m istydio, 브런치스토리 @yoonsohee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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