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험 한국서 나누는 ‘1세대 중국통’ 지성언 씨

[2016-08-12, 16:35:38] 상하이저널

30년 중국통, 꿈꾸는 꽃중년
중국경험 한국서 나누는 ‘1세대 중국통’ 지성언 씨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1세대 중국통 지성언 씨

 

 

중국생활 31년, 인생 절반을 중국에서 보냈다. 100세시대 인생 이모작을 꿈꾸며 한국으로 향했다. 조금은 낯선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1세대 중국통 지성언 씨. 색다른 분야에서 젊은 사람들과 또 다른 꿈을 꾸기로 했다. 그의 나이 우리 나이로 예순 둘이다.


“이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젊은이들과 함께 또 다른 멋진 일에 도전한다는 설렘이 더 컸다.”

 

지난달 한국으로 귀국한지 1주일만에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시작했다. 다음달이면 손주 4명을 둔 예순의 할아버지의 고국 선택은 대부분 ‘쉼’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는 휴식도 사업도 아닌 이직을 선택했다.


“디지털 중국어 교육, 온라인으로 중국어를 가르치는 ‘차이나탄’과 우연한 인연이 계기가 됐는데 케미가 맞았다. 차이나탄에서 부대표 겸 오프라인 캠프센터장으로 7월 중순부터 일을 시작했다.”


‘궁합’이 아닌 요즘 용어 ‘케미’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대화 짬짬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말이 새어 나오는 그는 꽃중년과 할배파탈 중간 어디쯤 있는 듯 하다. 패션업계에서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닉네임을 얻은 ‘꽃미남 중년’, 매너와 지성미를 갖춘 중후한 60대 ‘할배파탈’ 그에게 어색함이 없다. 감출 수 없는 감각과 에너지가 주머니 안 송곳처럼 튀어 나온다.

 

20년간 수출입역군으로


‘쉼’이 아닌 ‘도전’을 선택하고 꿈꾸는 꽃중년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그의 30년 중국 생활은 어땠을까. LG상사(당시 반도상가) 입사 2년만에 타이베이 발령을 받았다. 이 길로 30년을 중국에서 보내게 될 줄이야. 중국통 1세대로 불리게 된 출발점인 것이다. 1984년 LG상사 타이베이 근무는 당시 입사 2년차에게 파격적이었다. 주재원 TO 규정 때문에 학생신분으로 체류하면서 덕분에 4년간 어학코스를 마칠 수 있었다.

 

당시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드물었기 때문에 중국의 성장과 함께 고급인재가 된 것이다. 이후 홍콩 주재 근무를 거쳐 한중수교 1년 전 1991년 수도 베이징에 입성했다. 수출입 첨병으로 3년여 일하며 초창기 진출 기업으로서 값진 성과를 얻기도 했다. 배웠던 중국어가 큰 역할을 했던 것. 다시 중국개혁개방의 최전선 광저우로 활동무대를 옮겨 본격적인 중국 비즈니스 격전지에서 10년을 생활했다. 지나고 보니 당시가 종합상사 주재원 시절의 호사였음을 깨달았을 정도로 2004년부터 시작된 상하이 비즈니스 현장은 만만치 않았다.

 

상하이 패션맨으로 10년


“2004년 패션사업부문에서 상하이행 러브콜을 해왔다. 한국패션 브랜드의 중국내수사업 진출이라는 매력과 상하이라는 도시의 마력에 끌렸다. 소위 ‘패션맨’으로 첫발을 딛게 됐다.”


종합상사 수출입역군으로 일해온 20여년을 마감하고, 패션의 아이콘 상하이에서 새로운 10년을 맞게 된다. 당시 패션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상하이에서 브랜드사업을 하고 있는 직장 후배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패션내수산업 장난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무역부문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그래도 하려거든 그 넥타이부터 푸세요.”라는 후배의 돌직구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고백한다.


뒤늦게 뛰어든 분야에서 그는 철저하게 패션맨으로의 변신을 다짐했다.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곤 넥타이는 메지 않았다. 직장에서 청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상하이에서 10년, 헤지스(HAZZYS)를 비롯 MOGG, MOGG PINK, TNGT 등 여러 브랜드의 중국런칭을 주도했다. ‘패션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현장에 있어야 한다’, ‘패션은 나의 명함이다’를 생활화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매장을 돌며 소비자를 만났고, 회사 전용차를 이용하면서도 한 두정거장 미리 내려 걷기를 즐겼다. 길거리, 매장, 지하철 곳곳이 그에게는 중국 소비자를 만나는 접점이었다.

 

TOMBOLINI 화보촬영

 

길거리 캐스팅, TV광고·모델활동까지


재작년 LG패션을 떠나며 상하이에서 중국생활 마침표를 찍는 듯 했다. 그는 다시 미국 여성복 브랜드 내수 총괄을 맡아 2년간 패션현장을 더 누볐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학문적 갈망과 현지 인맥 강화를 위해 교통대 총재반&석사반 코스를 이수했다. 석사반 졸업생 대표로 단상에 올라 15분간 연설할 기회가 주어지는 영광도 얻었다. 유창하고 유머러스한 그의 연설은 한때 많은 졸업생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교통대 석사반 졸업생 대표연설


상하이에서 마법 같은 일은 계속 이어졌다. 작년 초에는 이탈리아 브랜드 ‘TOMBOLINI’ 스트리트패션 모델로 데뷔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또 길거리 캐스팅으로 TV광고에도 출연하는 흥미로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블로거들의 관심을 받아 콜라보형태의 그루밍족 패션을 소개하기도 했고, 상하이의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일도 하게 됐다.

 

언어·인맥·현장, 실천했는가


“예순을 넘어 모델활동과 길거리 캐스팅이 된 것이 흐뭇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넥타이와 양복으로 상징되는 종합상사맨에서 패션맨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는 성취감 때문이다. 그 동안 꾸준히 자리관리를 해 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 

 

중국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현장에서 소비자를 만나고, 현지인 인맥을 잘 관리하는 것. 그의 중국생활은 주옥 같은 조언도, 그만의 특별한 비결도 아니다. 하지만 진리는 늘 누구나 아는 당연함 속에 있다. 그 분야에 맞게 나를 바꾸었느냐, 그리고 실천했느냐는 것이다.

 

최장 중국근무자의 명예로운 중국졸업


7월 초 그는 중국을 떠났다. 중국 본토 25년, 타이베이 홍콩까지 합치면 31년이다. 직장인으로 최장 중국근무 기록을 세운 마지막 현역으로 명예로운 졸업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고민이 많았다. 물론 익숙한 패션분야에서 계속 일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시대 대한민국이 만들어준 1세대 중국통의 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 몸으로 체험했던 오랜 중국경험과 현장에서 갈고 닦은 살아 있는 중국어를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었다.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라는 생각에 주저 없이 새로운 이 길을 선택했다.” 

 

30대부터 50대, 인생의 클라이막스를 중국에서 보낸 그의 이야기에 지금의 우리를 들여다 본다.


고수미 기자

 

HE 이태리편집샾 브랜드 홍보 촬영

 

패션쇼 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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