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정기의사 기념사업회 유성엽 회장

[2015-03-20, 18:12:34] 상하이저널

미완의 거사 ‘육삼정 의거’를 기억하자

 ‘구파 백정기의사 기념사업회’ 유성엽 회장(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위원장)
‘구파 백정기의사 기념사업회’ 유성엽 회장(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위원장)
 

 

일제강점기 해외 3대 의거가 있다. 윤봉길 의거와 이봉창 의거 그리고 육삼정(六三亭) 의거다. 교과서에 등장한 두 의거는 역사상식으로 여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러나 육삼정 의거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 배경이 상하이라는 것을 교민들조차도 잘 모른다.


육삼정 의거 82주년을 맞는 지난 3월 17일 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완의 거사의 한을 풀 듯 우렁차게 외쳤다. 육삼정 의거 주역인 백정기 의사, 원심창 의사, 이강훈 의사를 추모하고 그들의 항일독립정신을 기리는 뜻 깊은 자리다. 백정기 의사의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참석한 ‘구파 백정기의사 기념사업회’ 유성엽 회장(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위원장)과 60여명의 회원들은 백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상하이 교민들에게 전했다.

 

“육삼정 의거 알리기, 기념사업회의 과제”


“육삼정 의거는 미완의 거사다. 윤봉길, 이봉창 의거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 의사의 숭고한 뜻은 한가지다. 현장에 직접 와보니 기념사업회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짐을 느낀다. 앞으로 육삼정 의거를 널리 알리고 세 분의 뜻과 정신을 후손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바쁜 의정활동 중에 상하이 육삼정 의거 현장을 직접 방문한 유성엽 회장은 육삼정 의거를 새롭게 조명하고 활발한 활동을 통해 정읍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로 외연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다.


기념식 하루 전 육삼정 의거 현장인 홍커우구(虹口区) 자푸루(乍浦路) 일대를 방문한 유 회장은 당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상하이 거리지만 일제강점기에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백 의사의 생각과 마음이 더욱 실감나게 와닿는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3년째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유성엽 회장은 정읍시장을 거쳐 18대, 19대 정읍시 국회의원의원을 지내고 있다.

 

“정읍은 ‘녹두장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유력한 국회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위원장인 유성엽 회장을 ‘정읍사와 녹두장군의 꿈을 가진 정치인’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넓고 강력한 리더십을 빗댄 찬사이자 ‘정읍’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 120주년을 맞은 동학농민혁명의 ‘녹두장군 전봉준’은 정읍을 함축한 단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읍에는 동학운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학운동은 의병운동으로, 다시 독립운동에서 이후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 내려왔다. 동학운동과 독립운동은 별개가 아닌 것이다.”


유성엽 회장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아는 것처럼 구파 백정기 의사를 기억해주기를 기대한다. 실제 역사전문가들은 백정기 의사를 ‘동학농민혁명군의 후예’라고 말한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7세부터 정읍에서 성장한 백 의사는 태어나기 2년 전 부안에서 동학농민혁명 발발해 그 여운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유년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1905년 13세에 결혼하고 미래를 꿈꾸던 그는 1910년 경술국치를 맞게 되면서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독립의지를 불태우는 등 자연스럽게 민족과 역사, 조국에 대해 깨달았던 녹두장군의 후예라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원했던 나라는 반쪽짜리는 아니었을 것”


또한 유성엽 회장은 상하이 교민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


“상하이는 근현대사의 역사 흔적이 가장 많은 곳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원했던 나라는 지금처럼 반쪽짜리 나라는 아니었을 것이다. 독립된 통일국가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해외에서도 사업, 학업 등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상하이 교민들이 되시길 바란다. 과거 독립운동을 했던 마음으로 부강하고 반듯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는 성공한 자를 기억한다’고 말하지만, 독립운동의 메카인 상하이에서 사는 교민들은 실패한 거사 ‘육삼정 의거’를 기억했으면 한다. 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 의사의 나라사랑정신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고수미 기자


육삼정 의거란


육삼정 의거는 1933년 3월 17일 홍커우구에 위치한 음식점 ‘육삼정’에서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와 중국국민당 친일파가 비밀 회동하는 현장에 폭탄을 투척하려 했던 거사다. 이날 일본공사가 중국정부 요인을 매수하기 위해 육삼정에서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남화한인청년연맹의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 등이 이를 처단하려고 했으나 내부 밀정에 의해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돼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거사를 주도한 백정기 의사(1896∼1934)는 1933년 11월 나가사키 법정에서 사형구형에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이듬해 이사하야 감옥에서 모진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백 의사의 유해는 윤봉길, 이봉창의사와 함께 1946년 국내로 봉환돼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원심창 의사(1906∼1973)는 거사 후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3년간 복역 중 1945년 해방 후에 풀려났다. 이후 재일거류민단을 만들어 재일동포 권익증진에 앞장섰다. 이강훈 의사(1903∼2003)는 해방 후 풀려나 1960년대 이후 혁신활동과 광복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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